그 후로 며칠 동안 토니는 연회 준비로 분주했다. 히드라를 문자 그대로 발본색원했으니 그걸 축하해야 했고, 토르는 창을 가지고 곧 아스가르드로 돌아갈 테니 그를 전송해야 했다. 더불어 토니 스타크식 연회에 부족한 물건이란 있을 수 없었다. 토니는 스티브를 방치해 두고(딱히 토니의 잘못만도 아닌 것이, 무엇을 물어도 모른다거나 괜찮다거나 없어도 된다는 대답만 반복한 것은 스티브 쪽이었다) 혼자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겼다. 가끔 힘 쓸 일이 생길 때만 불러다 부려먹었을 뿐이다.


연회 당일이었다. 모든 것이 토니의 계획대로였다. 사람도, 물건도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그러니까, 중간에 갑자기 난입한 누더기 아머를 빼면 말이다. 그것은 토니의 양산형 아머(주로 인명구조 및 간단한 작업에 동원되는 탑승 불가능한 아머)를 얼기설기 기워 붙인 것처럼 생겨 있었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토니는 – 당연히 – 양산형 아머를 기워 쓰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어 저런 것이 튀어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이 토니를 흘끗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아주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 날 도와줘야 해요, 박사. 울트론을 만들 거예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 모든 상황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토니는 조금 낯부끄러웠다. 그 목소리가 지나치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나 진짜 저렇게 미쳐 있었나? 하지만 그 이상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스스로를 울트론이라 밝혔던 누더기 아머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토니는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자비스를 불렀다. 하지만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싸움 자체는 비교적 시시하게 끝났다. 굳이 헐크가 튀어나오거나 토니가 아머를 입지 않아도 스티브와 토르 선에서 다 정리될 일이었다. 애초에 울트론에게 진심으로 싸울 생각이 없었으니 더할 것이다. 그것은 로키의 창을 훔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물론 창을 훔쳐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적대 표시인 데다, 마지막에는 ‘멸종’ 같은 단어까지 쓴 마당에 앞으로 영영 싸울 일이 없지는 않을 테지만.


연회에 참석했던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도망쳤다. 남은 사람들은 다친 곳을 살피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됐지? 토니가 난장판이 된 타워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토니 스타크! 네 짓인가!!”


토르의 목소리는 거의 불을 뿜는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아주 급격히 가까워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토니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용도 때려잡는다는 – 뭐, 직접 본 건 아니지만 – 든든한 팔뚝이 그를 번쩍 들어 올린 채였다. 숨이 막혔다. 토니는 제가 한 일이 아니라고 말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다. 어차피 토르는 그가 했다고 확신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시야 구석에서 스티브의 팔이 뻗어나와 토르의 팔을 붙잡았다.


“그 손 치우게.”


토르는 스티브를 흘끗 보았으나, 토니를 내려 주지는 않았다. 스티브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토르의 팔을 잡은 손에 당장이라도 부러뜨릴 것처럼 힘이 들어갔다. 덩달아 토르의 손아귀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번에는 숨 막혀 죽겠군. 토니가 한가한 생각을 하는 동안 배너가 한 발 늦게 세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둬요, 토르. 토니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 울트론인지 뭔지가 말하지 않았나, 그가 자기를 만들었다고!”
“그러니까 아니라고 하잖아요! 당장 토니를 내려놔요, 안 그러면...”


토르는 손을 놓았다. 토니는 휘청거리다 제 발로 섰다. 배너가 그의 앞을 비스듬히 가로막은 채 토르를 올려다보았다. 괜찮아요? 돌아보지도 않고 던진 질문에는 답이 없었다. 배너는 짧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토니가 한 게 아니에요.”
“그걸 어떻게 아나?”
“한 번 시도는 하려고 했지만 시작도 못 해 보고 끝났고, 그 다음엔 시간도 없었으니까요. 토니는 열 시 반이면 잠자리에 든다고요.”


토르의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헬렌 조 박사였다. 예전에 알던 사이라며 토니는 그녀를 연회에 초대했다. 그녀는 의사이기도 했기에 어벤저스 멤버들의 부상을 살펴 주던 참이었다. 토르가 뒤를 돌아보았다. 헬렌은 조금 더 웃다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농담이라면 별로 재미없네요.”
“......”
“......”
“왜 그런 얼굴로 보세요? 토니 스타크가 그럴 리 없잖아요.”
“......”
“......”
“...잠깐만요, 혹시... 진짜로요...?”


배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토르는 여전히 의혹이 채 가시지 않은 눈으로 토니를 보고 있었다. 그럼 그게 왜 그런 말을 한 건가? 그 목소리는? 토니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내가 한 게 맞으니까.”
“토니!”
“뭐라고?!”
“난 만들 생각만 잠깐 했을 뿐이지만 만들어진 걸 어쩌겠어. 딱히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닌 것 같으니까 생각한 내가 잘못이지. 미안해, 마음대로 생각도 하면 안 되는 줄은 몰랐어.”


토르는 입을 다물었다. 언뜻 그 얼굴 위로 후회하는 빛이 스친 것도 같았다. 토니는 시선을 내렸다. 뭐라 설명할 수도 없고 변명하기도 싫었지만 그냥 슬펐다. 저런 게 갑자기 튀어나와 나를 지목하면 다들 그걸 믿는구나. 결국 내 이미지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지. 배너가 다시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진 모르겠지만... 그나마 죽은 사람은 없으니 다행이네요.”
“...있어요.”
“...네?”


토니는 토르와 배너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한두 발짝 걸어갔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얇은 판을 털었다. 곧장 일그러진 주홍빛이 커다랗게 떠올랐다. 그 순간에는 누구도 그 공 모양이 되다 만 듯한 주홍빛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배너와 토니를 제외하고는. 배너가 헛숨을 들이키며 반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


“...자비스?!”


토니는 입을 열려다 다시 다물었다. 뭔가 말하는 것 자체가 턱없이 지난하게 느껴졌다. 물론 울트론이 이런 짓을 벌였을 것이다. 자비스가 자살할 리도 없고, 연회에 참석했던 사람 중 누군가가 그랬을 리도 없으니까. 하지만 원인을 안다고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토니가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과 이름만 같은 미친 살육병기가 그의 아들을 살해했는데, 대체 무슨 말을 하면 좋단 말인가? 대체 그건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온 것인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만 머릿속에 가득히 쌓였고, 거의 감당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어지러웠다. 토니는 막연히 울고 싶었다. 미친 듯이 울고 세상을 저주하고 주위의 아무나 욕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감정에 휩쓸려 이 순간을 보낼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삶의 그 어느 때보다도 냉정해야 했고, 침착해야 했다. 당장에라도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아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브가 다가와 토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마치 그가 어떤 보이지 않는 스위치를 누른 것처럼 토니는 빠르게 입을 열었다.


“...내가 찾을 거야. 찾아서, 더 이상 미친 짓을 못 하게 만들 거야.”
“...스타크.”
“걱정 마, 두들겨 부술 땐 당신도 끼워 줄 테니까.”
“그게 아니라...”
“이제 그만. 두 사람 다 그쯤 해두자고. 스타크, 다친 덴 없어?”


내내 말이 없던 나타샤가 끼어들었다. 토니는 낯선 것을 보듯 그녀를 보았다.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의식을 현실에서 한 발 떨어진 곳에 유리시킨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그는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나야, 뭐 다칠 것도 없지. 그의 목소리가 충분히 평소답지 않았는지 나타샤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다행히도 그녀는 그것을 직접적으로 지적하지 않았다.


“그럼 그만 가서 쉬어. 열 시 반은 진작 지났잖아. 청소는 더미나 뭐 그런 애들이 알아서 해 줄 거고, 우리도 치료받고 바로 쉴 거니까.”
“...그래?”
“푹 쉬고, 내일은 그 이상한 걸 쫓자고. 잡으면 제일 중요한 부위는 당신한테 넘겨줄게. 히드라 때처럼.”


마지막 말과 함께 나타샤는 살풋 미소를 지었다. 토니도 간신히 미소 비슷한 것을 지었다. 비록 그의 부모를 죽이도록 명령한 자는 끝내 찾을 수 없었지만, 어쨌든 히드라를 토벌할 당시 토니는 문자 그대로 원 없이 미쳐 날뛰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자비스는 그의 – 토니는 꼬리를 물고 떠오르려는 어두운 생각들을 끊으려고 애썼다. 총이 있었다면 좋았을 걸. 스티브가 등 뒤에서 그를 끌어안았다. 또 왜. 토니가 귀찮은 듯 뒤를 돌아보자 그는 머뭇거리다 한 발 물러났다.


“...그럼 간다. 다들 치료 잘 해. 헬렌, 부탁 좀 할게.”
“...아, 네...”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 헬렌이 멍하니 대답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스티브의 정체도, 울트론의 등장도 무엇 하나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뭐, 전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후자는 토니조차 설명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토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다 귀찮았다. 저 난장판이 된 연회장 한가운데라도 드러누울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 싶을 정도였다. 방으로 가는 길이 더럽게 멀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타워가 너무 조용해서 더 그랬다. 방문이 등 뒤에서 닫히자마자 토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스티브가 당황하며 그를 안아 일으켰다.


“...토니.”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
“토니, 난...”
“넌 이거 이해 못 하잖아. 넌 슬픔이 뭔지 모른다며. 내가 죽어도 안 운다고 했잖아.”
“...그래.”
“그러니까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마. 왜냐면 나는 슬프고, 그게 뭔지 널 이해시키려고 뺄 힘도 없어. 나는 울 거니까 나 좀 내버려둬. 그렇게 못하겠으면 그냥 나가든가.”


토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스티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토니를 침대로 데려가 조심스럽게 눕히고는 그보다도 더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침실에 불이 환했고, 기다려도 꺼지지 않았다. 잘 때는 불을 꺼야 한다고 말하는 목소리도 없었다. 서럽고, 슬프고, 화가 났다. 토니는 자신이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로 가득 찬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아니면 불행을 불러들이는 자석이거나. 어쩌면 양쪽 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순간 제 신세나 한탄하고 있는 스스로가 정말로 싫어졌다. 그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밤새 울었다. 스티브는 내내 침대 옆에 서 있었다.


다음날 토니는 피곤한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왔다. 토르가 지독히도 미안한 얼굴로 사과했다. 토니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헬렌은 동정 반 호기심 반 섞인 눈으로 토니와 스티브를 번갈아 보더니 살짝 곁으로 다가왔다.


“괜찮아요?”
“뭐 죽을 만큼은 아냐. 왜?”
“어제 얘기 들었어요.”


무슨 얘기인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토니 스타크가 날개 달린 파충류랑 결혼했다는 뭐 그런 종류겠지. 토니는 조금 전보다 더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헬렌의 눈빛에 호기심과 결의가 더 많이 묻어나왔다. 뭔가 더 바라는 게 있군. 토니는 마침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그게요, 토니. 당신 세포하고 혈액 샘플 좀 채취해도 되나요?”


토니는 눈을 두 번 깜빡이기도 전에 사태를 파악했다. 늙지도 죽지도 않고, 다쳐도 금방 회복하는 몸이라니. 좀비라고는 해도 과학자 입장에서 이렇게 연구하고 싶은 대상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헬렌은 의학 계통이 아닌가. 문제는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는 영 다른 현실이었다. 토니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뭐. 주는 건 어려울 게 없지.”
“정말요?”


헬렌의 눈이 반짝였다. 당장이라도 면봉과 주사기를 들고 덤빌 것 같았다(칼 들고 안 덤비는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토니는 그녀가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겠다며 몸을 돌리기 전에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근데 연구는 못 할 거야. 나한테서 떨어지면 금방 없어져서.”


헬렌이 그 말을 이해하는 데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어쨌든 그녀는 토니가 머리에 총을 맞고 엎어졌던 걸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녀의 어깨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졌다. 마치 마지막 희망을 걸기라도 하듯 그녀가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꽤 필사적이었다.


“그, 그럼 머리카락 같은 건요...?”


토니는 대답 대신 머리카락을 몇 올 뽑아 건네주었다. 물론 머리카락은 헬렌의 손 안에서 순식간에 부스러져 사라져 버렸다. 헬렌은 선물 받은 솜사탕을 물에 씻은 너구리 같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토니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스티브와 클린트가 목격했던 ‘빠른 남자’에게는 쌍둥이가 있었다. 여자였고, 이름은 완다 막시모프였다. 빠른 남자의 이름은 피에트로였다. 그들은 자진해서 히드라의 인체실험을 받았다고 했다. 애들은 겁이 없지. 맹목적이고. 토니는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했다. 그들은 스트러커 남작의 성이 함락되었을 때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 전에 미리 도망친 모양이었다. 피에트로의 능력은 그 엄청난 속도이고, 완다의 능력은 정신조종이라니 마음만 먹으면 도망치기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배너는 완다가 토니의 정신을 조종했던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은 있어 보였다.


어쨌든 사라진 남매는 무려 울트론과 한패가 된 것 같았다. 인류 멸절을 주장하는 누더기 아머와 인체실험을 통해 강력한 힘을 얻은 고아 남매가 함께 추구하는 목표란 무엇인가? 울트론에게도 동정심이라는 게 있어서 불쌍한 남매는 살려줄 생각일까? 아니면 그 남매가 부모를 빼앗고 고통스런 실험을 당하게 한 세상이 미워서 싹 다 없애고 싶은 건가? 어느 쪽도 딱 이거다 싶지 않았다. 토니는 그들 중 누군가가 진짜 목적을 감추고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 두었다. 어차피 당장 확인할 수는 없을 테지만.


스트러커 남작은 감옥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의 성에서 압수했던 자료들은 전부 파괴당했다. 토니는 짜증을 냈다. 저거 백업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나타샤와 배너가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은 멀뚱하게 보고만 있었다. 어찌나 철저하게 파괴했는지 뭔가 없어진 게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가 없었다. 토니는 탁자 앞에 비스듬히 앉아 턱을 괸 채 중얼거렸다. 하지만 뭔가 없어진 게 있겠지. 배너가 말을 받았다. 안 그러면 저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죠. 클린트가 끼어들었다. 근데 그게 뭐냔 말입니다. 모두 입을 다물었을 때 스티브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 무슨 종이가 가득 든 상자들이 있던데.”


그들은 온갖 언어와 단어들을 동원하여 울트론에게 다채로운 욕설을 퍼부으며 그 서류들을 뒤졌다. 두 시간 정도 씨름한 끝에 토니는 좀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나 얘 알아. 모든 사람들이 하던 것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저놈이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눈빛들이었다. 그 남자와는 토니가 아직 무기를 만들어 팔던 시절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나는 별로 관심 없었는데 자꾸 껄떡대더라고. 토니가 그렇게 말하자 스티브가 대번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이 자가 범인이군.”
“범인은 울트론이지. 이놈이 맞다 해도 얘는 목표물일 거고. 그보다 아직 아무 얘기도 안 했거든? 아니, 잠깐. 저런 문신은 없었는데.”


토니가 손가락으로 남자의 사진을 가리켰다. 배너는 벌써 그 문신 모양을 스캔하고 있었다. 스티브는 여전히 마뜩찮은 얼굴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 자가 뭐라고 하던가? 토니는 신경의 절반쯤과 시선을 배너 쪽에 둔 채 반쯤 건성으로 대꾸했다.


“새로운 전쟁 무기... 뭐 자기랑 손잡자고... 그리고 나를... 어, 아프리카 방언이에요?”
“네. 문신이 아니고 낙인 같군요. 도둑이란 뜻이래요. 뭔가 훔치다 붙잡혀서 경멸의 의미로 찍힌 게 아닐까요?”
“자네를 뭐?”
“좀 조용히 해. 어디 말이에요? ...와칸다?”


토니와 배너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졌다. 그걸 훔친 걸까요? 배너가 조심스레 물었다. 내 아버지가 갖고 있던 게 마지막이었으면 좋았을 걸. 토니는 음울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짐작도 못 한 다른 멤버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말하는 겁니까? 클린트가 그들 모두를 대표하듯 그렇게 물었다. 토니와 배너가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비브라늄.”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금속이요.”
“캡틴 방패요? 저것뿐인 게 아니었습니까?”
“나도 그랬으면 참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많아. 가자고, 난 울트론이 이놈을 찍었을 거라고 거의 확신하지만, 설령 아니라도 가 봐야겠어. 이놈이 정말 비브라늄을 빼돌린 거라면 거의 재앙이 일어날 테니까.”


그들은 전투 준비를 위해 각자 흩어졌다. 토니도 몸을 돌렸다. 여전히 스티브가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남자, 율리시스 클로의 사진을 노려보다 토니를 돌아보았다.


“왜?”
“...자네를 뭐?”
“...아 진짜!”


아무래도 한동안 안 맞더니 이놈의 도마뱀이 미친 게 분명했다. 토니는 짜증이 나서 스티브를 발로 퍽퍽 걷어찼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대체 뭐가 문제야! 스티브는 한참 얻어맞다 등을 떠밀려 전투 준비를 하러 갔다. 끝까지 퍽 억울한 표정이나 짓고 있어서 더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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